정교회의 길

 

The Orthodox Way
by
Kallistos Ware

translated

by
Sung-Ok Eum

 

서언

이정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교회가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것은 어떤 체계나 조직이 아니라 열쇠이며, 하나님의 도시에 대한 계획이 아니라 그 도시에 들어가는 수단이다.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길을 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매개자가 없이 직접 보게 될 것이며, 그가 보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실질적인 것이 될 것이다. 한편 계획만 연구해온 사람들은 외곽에 머물 뿐 아무것도 진정으로 발견하지 못한다.

Fr. Georges Florovsky

 

4세기에 이집트에서 생활한 사막의 교부들 중 잘 알려진 인물인 시돈 사람 사라피온(St. Sarapion the Sidonite)이 언젠가 로마로 순례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유명한 은수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인은 작은 방에서 살면서 결코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방랑수사였던 사라피온은 그 여인의 생활 방법에 대해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그여인을 찾아가서“당신은 왜 이곳에 앉아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은“나는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모두 이 말을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 교부들은 말하기를, 우리의 상황은 시나이 사막을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과 흡사하다고 했다. 우리는 집이 아니라 장막(천막)에서 생활한다. 이는 우리가 영적으로 항상 이동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이라는 내면의 공간을 통과하는 여행, 달력이나 시간에 의해서 측정되는 것이 아닌 여행을 하고 있다. 그것은 시간에서 벗어나 영원으로 들어가는 여행이다.

그리스도교를 지칭하는 고대의 명사들 중 하나는“길”(道, way)이다. 사도행전에서는“그 때쯤 되어 이 도(道)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행 19:23)라고 말한다. 가이사랴의 총독 벨릭스는“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알고 있었다(24:22).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실질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명사이다. 그리스도교는 우주에 대한 신학이라기 보다는 종이에 기록된 가르침이다. 그것은 우리가 여행하면서 따라가는 길이다. 가장 심오하고 풍성한 의미에서 삶의 길이다.


그리스도교의 참된 본질을 발견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이 길을 걸어야 하며, 이 길에 헌신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스스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외곽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출발하기 전에 지시를 받아야 한다. 어떤 이정표를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을 들어야 하며, 함께 여행할 동료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안내를 받지 않은 채 여행을 시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공하는 안내는 실제로 그 길이 어떤 것인지를 전해 주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가 직접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 각 사람은 자신이 이미 배운 것을 검증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각 사람은 자신이 받아들인 전통을 직접 체험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모스크바의 총대주교 필라렛(Philaret)은 “당신이신조대로 살지 못하면, 신조는 당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라고 했다. 이 여행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므로 누구도 이론적으로 편안하게 여행할 수 는 없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인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에게는 자녀들이 있을 뿐 손자들은 없다.


나는 정교회의 신자로서 특히 생생한 경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20세기 서구인들이 보는 정교회의 특징은 유서 깊음과 보수주의인 듯하다. 그리고 정교회가 서방 형제들에게 주는 메시지는“우리들은 당신들의 과거이다”인 듯하다. 그러나 정교회 교인들의 입장에서 전통에 충실하다는 것은 과거 시대의 공식이나 관습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 현재 여기에 임재해 계시는 성령을 영원히 새롭게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 베체만(John Betzjeman)은 그리스의 어느 시골 교회를 방문했던 일을 묘사하면서 유서 깊음이라는 요소를 강조하지만, 그 이상의 것도 강조한다.


… 돔 형태의 내부는 시대를 초월한다. 여기에서 촛불을 켜는 것은 곧 기도하는 것이며, 촛불은 그 지역 성인들의 눈을 나타낸다. 그들은 햇빛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는 벽에 묘사된 자기들의 순교를 놀라지 않고 바라본다. 촛불은 금이 간 그림을 밝혀준다. 초록색, 빨간색, 황금색으로 된 그림을 많은 사람들이 입을 맞추었던 14세기의 성화들을…. 이처럼 고목은 박해와 순교의 피를 먹고 왕성하게 자란다. 그 살아 있는 나무는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의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나무는 관료주의적인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영원히 부활한다. 여기에서 베체만은 정교회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것, 촛불을 켜는 것, “세상에 있는 천국”으로서의 지역교회의 의미를 전달하는 이콘(성상)들의 역할, 정교회가 1453년 이래 터키인들에게서 받은 박해와1917년 이후로 공산주의 치하에서 받은 박해 등으로 관심을 끌어간다. 현대 사회에서 정교회는 늙은“고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륜 외에도 생명력, 즉 “영속적인 부활”도 지니고 있는데, 단순한 연륜보다는 이 생명력이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는“나는 관습이다”라고 하시지 않고“나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책의 목표는 이“영속적인 부활”의 심오한 근원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 책은 영적인 여행길에 세워져 있는 중요한 이정표와 표지들 중 일부를 지적해 준다. 이 책에서는 정교회 세계의 과거사와 현대의 상태에 대한 사실적인 기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 정보는 내가 전에 저술한 책『정교회』(The Orthodox Church, Penguin Books)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은 1963년에 출판되어 1993년에 개정판이 발행되었다. 나는 되도록 그 책에서 언급했던 것은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 나의 목적은 믿음을 삶의 길이요 기도의 길로 여겨 접근하면서 정교회의 기본적인 가르침들에 대한 간단한 기사를 제공하려는 데 있다. 톨스토이가 자기의 단편에『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을 붙였듯이, 이 책을『정교회 신자들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형식을 중시하던 이전 시대에서라면, 이 책은 질문과 대답을 지닌“성도들을 위한 요리문답”의 형태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는 교회 및 교회의“절충적”특성에 대해서, 성도들의 교제와 성례와 성찬 예배의 의미에 대해서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 혹시 내가 다음에 저술하는 책에서 는 이것을 주제로 삼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 다른 종파와의 교제를 언급하지만,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비교하지는 않는다.

 

나는 로마 가톨릭 교회나 개신교와 일치 또는 상위하는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기보다, 정교회 신자인 내가 지닌 믿음을 적극적으로 묘사하는 데 관심을 진다. 나보다 더 훌륭한 증인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많은 인용문을 첨가했다. 특히 각 장의 시작 부분과 결론 부분에 인용문을 추가했다. 그리고 인용한 저자들 및 원전들에 대한 간단한 주를 책 끝 부분에 제시했다. 대부분의 인용문은 정교회에서 매일 사용되는 의식서, 또는 교부들-주로 교회사 첫 8세기 동안의 작가들-의 글에서 인용했다(간혹 그보다 후대의 글을 인용한 것도 있다). 이 인용문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영적인 길을 탐험하는 데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는 표지판으로 입증된 것들이다.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인용한 작가들의 글도 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신 구세주여,
이제 여행을 시작한 당신의 종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을 모든 악에서 보호하여 주옵소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드리는 기도)
1978년 9월 26일
거룩한 사도요 복음전도자인
신학자 요한을 기념하는 축일에

 

목차

 

차례
서언 / 7
제1장 신비이신 하나님 / 13
제2장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 41
제3장 창조주 하나님 / 69
제4장 인간이 되신 하나님 / 113
제5장 영이신 하나님 / 153
제6장 기도가 되시는 하나님 / 181
끝맺는 말: 영원이신 하나님 / 229
이 책에 인용된 인물들 /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