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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등불 Silent Lamp; The Thomas Merton Story

근대 기독교 영성가 토마스 머튼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관상적인 영성은 하나님께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세상 사람들과 우주를 인도하고 유지하신다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초월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비전을 동일시하기를 거절한다. 관상적인 영성에서 하나님은 모든 실재의 중심에 현존하시는 신비이다. 관상적인 영성은 우선적으로 기도나 기도의 어떤 방법이거나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끌어안는 것이다.


관상적 영성의 일차적인 관심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거짓 하나님을 가차없이 부수어 버린다. 그것은 우리가 여태까지 믿어온 이원론의 하나님을 우리로부터 가져갑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가부장적인 하나님을 떠나보내도록 요구한다.

관상적인 영성은 하나님에 대한 매우 분명하거나 결정적인 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관상적인 영성의 하나님은 신비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이며 알 수 없는 분이시다.

이 책은 은 명쾌함과 확신감의 놀라운 조화로 이루어졌다. ‘토마스 머튼의 편지들’의 총 편집장이기도 한 저자는 대가답게 자신만한 방식으로 자신의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였다.
이 책은 머튼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작품 가운데 결정판이거나 적어도 권위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을 것이다. 이 책은 다소 특별한 종류의 전기문이다. 머튼 생애의 각 시기는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제시된다.

『고요한 등불』은 중국 철학자인 존 우(John Wu)가 초기 도가 사상의 현자인 장자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동안에 머튼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존 우는 “당신은 매우 철저하고 깊이 있는 그리스도인이어서 다른 종교들의 중요한 근원에 이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썼다.

기독교 수도자로서의 그의 고요한 소명으로부터 작가로서 그리고 교사로서의 머튼의 모든 놀라운 활동이 흘러나왔다. 시대에 뒤쳐져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여겼던 20세기에 시대에 부적절한 것이라고 대체로 여겨져 왔던 삶의 방식이 이제는 굉장히 결실이 풍부한 것으로 입증된다. 학문적이고 해설적이기보다는 시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로서의 머튼의 다양한 은사들은 그의 삶의 중심적이며 그 삶을 통합하는 원동력 주변으로 하나로 모아졌다.

이 고요한 등불로부터 비취는 빛은 비추는 힘뿐만 아니라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것은 너무나 희망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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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지리적 순례는 내적 여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행위다.
1987년 5월 3일, 나는 영국의 캠브리지에 있는 클레어 대학에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 이었는데, 나는 코랄 이븐송(Choral Evensong)에서 강론을 하도록 초대받았다. 그 교회의 교목은 그해의 부활절 기간(Eastertide)동안 저녁예배의 전체적인 주제를 “우리시대의 성인들”로 선택했다. 나는 그곳에 있던 어린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초대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나는 여러분 각자가 여러분의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다음 세기, 특히 2041년에 투영하고 다음의 시나리오를 시각화해보세요. 지금으로부터 54년 후, 클레어 대학의 바로 이 채플을 상상해 보세요. 미국에서 온 한 로마 가톨릭 사제가 이븐송(evensong)에서 강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제는 “오늘을 위한 성인”입니다. 그는 “오늘을 위한 성인”으로 말할 대상인 그 사람을 매우 신중히 선정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나는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시나리오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웃기고도 우스운 것으로 여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일이 지금으로부터 54년 후 여러분 중 어느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 때에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늘 저녁 “우리 시대의 성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에게 54년 전인 1933년 가을에, 18세의 나이로 클레어(Clare) 대학에 왔던 한 사람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54년 전 그때에, 만일 누군가가 여기 이 채플에서(머튼이 클레어 대학에 있는 동안 그는 단 한번 이 채플에 왔었다.) 50년 후의 “이 시대의 성인”으로 그를 환호하며 맞이했더라면 그는 (아마도 Lion Inn이나 Red Cow에서의 정기 모임에서처럼) 폭소를 터트렸을 것입니다. 그는 “이 시대를 위한 죄인”이라는 표현이 그에게 붙이기에 더 적합한 명칭이라는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제목
『고요한 램프』는 머튼이 가장 좋아했던 책 중의 하나인 『장자의 길(The Way of Chuang Tzu)』을 쓰는데 도움을 주었던 중국학자인 존 우(C.H.Wu)가 머튼이 죽기 2년 전에 붙여준 새로운 이름이다. 머튼은 우(Wu) 박사의 문자적 번역본을 포함해서 장자에 관한 여러 개의 중국어 번역본을 참고하여 그 자신만의 고대 도가 사상가에 관한 번역본을 만들었다. 존 우(John Wu)는 그 책에 도취되었다. 1965년 5월에 머튼이 쓴 ‘도(道)’에 관한 시들을 받자마자 존 우는 이렇게 썼다. “나는 완전히 매혹되었다. 만일 장자가 영어로 썼다면 그는 분명히 이렇게 썼을 것이다.” 존 우는 완성된 책을 받은 12월에 중국어로 시를 쓴 뒤 머튼을 위해서 번역했다.

한밤중에, 완전히 홀로, 나는 여전히 이불에 싸여있네(wrapped up).
정말 단순하며 자연스러운 당신의 새로운 번역본(책)을 즐기면서
마치 내가 환생한 장자와 함께
대담을 나누는 것처럼 느끼네!



이 시는 “메이텡(Mei Teng)”에게 헌정되었는데, 우 박사는 그것이 “고요한 램프”를 의미하는 “당신의 중국식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로 이 이름을 이 책의 제목으로 선택했다. 먼저, 그 이름은 머튼의 삶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리고 성경에는 한 사람의 삶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그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는 강력한 전례가 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변경된 것은 성경의 많은 실제의 예들 중 하나이다. 1965년은 머튼의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해이다. 그해 8월에 그는 마침내 수도원으로부터 1마일정도 떨어진 숲에서 살아가는 “전임” 수도승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장소의 변화는 깊은 내적 변화를 상징했다. 『장자의 길』은 단지 머튼의 생애에 있어서 문학적인 이정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영적 성장의 분기점이었다. 그것은 그가 영적인 여정 가운데 어디쯤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언이었으며, 포괄적이고 더 나아가 심지어 문화 초월적인 의미에서 그가 진정으로 보편적인(catholic) 영성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었다는 표시였다.

이 제목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는, 토마스 머튼이 전 세계 수천 명의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그 이름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즉, 머튼이 그의 글에서 구체적으로 표현 된 대로 그는 영적인 지도 없이 삶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 여정에서 영적인 조명을 거의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빛을 비추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나는 머튼의 광범위한 독자층을 형성하는 사람들에게 다음의 이사야의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


묵상적인 전기
토마스 머튼은 집을 가졌던 적이 결코 없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대부분 동안 외조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그의 아버지와 여행을 하거나 기숙학교에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항상 그의 두 아들을 위해서 집을 만들고자 했지만 실제로 실행하진 못했다. 어떤 이는 토마스 머튼이 이처럼 27년의 세월을 방랑하면서 보낸 후 마침내 수도원에서 그의 집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961년에, 20년을 수도원에서 보낸 뒤 돔 피에르 반 데어 미어(Dom Pierre Van Der Meer)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고향을 향하는 길은 점점 더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한때 매우 선명했던 단계들을 바라볼 때, 그러나 나는 아직도 우리 모두가 올바른 길 위에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비록 밤일지라도, 그것은 구원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2년 뒤인 1963년에, 그는 『칠층산』의 일본어판 서문에서 다시 다음과 같이 썼다: “내 수도원은 집이 아닙니다. 그곳은 내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한 장소가 아닙니다.”
심지어 그는 겟세마니 수도원에 있는 것이 아주 행복하다고 말했던 『칠층산』과 『요나의 표적』에서 조차도 결코 수도원을 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곳은 그가 수도자로서 서약하고 기름부음 받은 장소이다. 그곳은 “불타는 약속의 땅”이며 “침묵의 장소”이자, “천사와 씨름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하나님이 그에게 “영원 속에 정착”하도록 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집’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를 가진 곳은 아니다. 십년 단위로 나눠진 이 인용구들에서, 머튼은 겟세마니 수도원이 그를 정착하게는 했지만, 겟세마니 수도원이 있는 곳, 즉 이 지상 위가 아니라 다른 어떤 곳, 즉 영원에 정착하도록 했다고 말하고 있다. 겟세마니는 집을 가리키지만 ‘집’ 그 자체는 아니다.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보통 책을 읽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선 각 장들을 읽고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연대기를 찾아 읽거나 혹은 책의 각 장들만 먼저 읽은 후에 연대기를 읽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토마스 머튼 이야기에 대한 그림을 꽤 빨리 얻기 위해 우선적으로 연대기를 읽고 각 장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선택은 독자에게 그리고 토마스 머튼에 대하여 독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관심의 종류에 달려 있다. 그 지식과 관심이 무엇이든지 간에 나의 희망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성장을 위한 원천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제1장 토마스 머튼의 은사

토마스 머튼을 알고자 한다면, 그가 은사의 열매를 맺었던 특별한 방법뿐만 아니라 그가 소유했던 특별한 은사들에 대해서도 깨달아야만 한다. 사실 인간의 생애는 한 사람이 받았던 은사들을 인식하고 현실화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천부적 재능과 영적인 은총들은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축복들이다. 동시에 그것들은 때때로 인간의 영혼에 과도한 무게로 느껴지는 책임감들을 부과하는 짐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은사들은 우리가 마음대로 꺼낼 수 있는 은행계좌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유로 말하자면 은사들은 그 참된 아름다움이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기 전까지, 때로는 고통과 괴로움의 대가를 치르며 다듬어져야 하는 거친 돌덩이다. 그것들은 오직 노력을 통해서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우리의 자유에 심겨진 씨앗들이다; 또한 은사가 크면 클수록 그것들을 꽃피우기 위해서 더욱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의 인생 이야기는 이 은사들을 깨닫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시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전인성을 이루는 방향으로 통합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이 은사들이 그것들과 함께 가져오는 축복들을 받아들이고 부담을 감당해야만 하는 변증법적인 것이었다. 축복들과 부담들 사이에서 도출된 긴장은 노력을 기울인 씨름 없이는 해결되지 않았다. 『칠층산』의 결론 부분에서, 머튼은 놀라운 예언적인 방법으로 그의 은사들이 가져올 부담들을 예상하고 그것들이 맺을 열매들을 예견한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도록 한다

“나는 네가 바라는 것을 주리라. 나는 너를 고독으로 인도하리라. 나는 가장 바른 길을 원하는 까닭에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길로 너를 인도하리라. 그러므로 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너를 반항하고 거부하고 때리고 괴롭힘으로써 너를 고독으로 쫓아낼 것이다. 그것들이 너를 미워하는 까닭에 너는 머지않아 홀로 남을 것이다. 그것들은 너를 저버리고 배척하여 추방할 것이요, 그러면 너는 홀로 되리라···· 네가 선물을 받으면 그 부담 때문에 짓눌리리라. ··· 그리고 네가 약간 칭찬이나 사랑을 받으면, 나는 너의 모든 선물과 사랑과 칭찬을 빼앗을 터인즉, 너는 온전히 망각되고 버려져 배척받고 죽은 허무한 자가 되리라. 그러면 그날 비로소 네가 그다지도 오래도록 소망하여온 고독을 차지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고독이 네가 이 지상에서 결코 만나보지 못할 사람들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리라.”

머튼이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는 이 세 가지 은사들을 마치 그의 삶에 있어서 세 개의 다른 영역을 대표하는 것처럼 개별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즉, 그를 우연히 수도승이 된 가톨릭 교인이라든지 우연히 작가가 된 가톨릭 수도승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이 은사들은 은사들 간의 상호 관계 속에서 볼 수 있어야만 한다. 수도승이 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그의 생활 방식이었고, 그가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싫어했지만, 어쨌든 작가가 된 것은 가톨릭 수도승으로서의 존재방식에 순응한 것이었다. 이러한 은사들의 축복과 부담감의 수용에서 뿐 아니라, 그 은사들 간의 상호관계성에 대한 경험과 그것들을 둘러싸고 그의 삶을 통합하고자 했던 노력을 통해 머튼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① 글쓰기의 은사
② 신앙의 은사
③ 수도원적 소명의 은사


제2장 프랑스 시절

머튼에게 있어서 1925년은 매우 불행하게 시작되었다.
1924년 말에 그는 병을 얻어서 거의 죽을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젠킨스(Jenkins) 가족은 그 병에 대해서 통보받았다. 또 다시 톰은 그의 어머니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그의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편으로 알게 됐다. 그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나이였다. 그는 『칠층산』에서 그에게 닥친 슬픔과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웬이 어떤 질병을 앓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그가 알제리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어떤 종류의 풍토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가 겪고 있는 개인적 문제들 즉, 에블린 스콧(Evelyn Scott)과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그러한 결혼은 시작부터 불행에 처해지게 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현실적으로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고뇌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그의 상태(그것이 어떤 상태였든지 간에)가 (야기된 것이 아니라면) 확실하게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br>
어쨌든, 오웬은 그 알 수 없는 질병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으로부터 회복되었다. 아니 최소한 치유받은 것처럼 보였다. 5년 후, 그는 살아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될 병원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은 이 회복이 단지 일시적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그러나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그가 병으로부터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런던의 레세스터(Leicester) 갤러리에서 그의 회화 전시회를 준비할 수 있는 힘과 열정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전시회는 1925년 3월에 열렸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맨체스터 가디언(Manchester Guardian)』지의 한 논평자는 오웬 머튼의 작품을 “능숙하게 간단히 효과를 넣는 것(deft simplicity of effect)”과 “주제에 대한 굉장히 세밀한 이해”를 가진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다른 비평가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구경꾼들의 시선을 공간의 깊이 속으로 이끌었는데… 그것은 그의 붓놀림이 힘차고 세련되었다기 보다는, 손대지 않은 지면을 굉장히 잘 사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도구의 간결함은 마지막 지점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그 그림은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어느 누구도 그 그림 위에 또 다른 덧칠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즉각적인 특징들은 보자마자 매력을 준다.”

…후에 『칠층산』에 기록하고 있듯이 존 오웬이 1925년 여름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아들 톰은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진술한다. 그는 그 차이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하지는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의 작품에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이 그가 어렸을 때 무척이나 싫어했던 여인의 마수로부터 마침내 오웬이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미묘한 방법이었을까? 그가 유일하게 밝힌 한 가지 작은 차이점은 오웬이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는 점인데, 머튼은 한때 이에 대해서 강력히 반대했다. 머튼이 아버지를 집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한 가지 다소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수염을 깎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오웬은 그의 첫째 아들의 둔감함 때문에 상처받았을 테지만, 수염을 자를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그는 곧 훨씬 더 고통스러운 말을 했다. 그가 톰에게 “우리는 프랑스로 가게 될 거야.”라고 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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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토마스 머튼 저서의 약어
도입
제1장 토마스 머튼의 은사(Gifts
제2장 프랑스 시절, 1925-1928
제3장 오캄 스쿨, 1929-1932
제4장 캠브리지 대학교, 클레어 칼리지, 1933-1934
제5장 콜롬비아 대학교 시절, 1935-1940
제6장 성 보나벤투라 대학교, 1940-1941
제7장 겟세마니: 글쓰기(문필)의 은사
제8장 겟세마니: 수도 성소의 은사
제9장 겟세마니: 신앙의 은사
제10장 세상으로 돌아옴, 1958
제11장 냉전 편지의 해
제12장 인종간의 평등을 위한 투쟁
제13장 수도원의 갱신
제14장 세계의 종교들
결론 토마스 머튼 : 자유로운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