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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제1부 예배로서의 신학: 성찬예배와 성례전
         제1장 지상의 천국     11
         제2장 성례전     27
         제3장 이콘의 의미와 내용     43 
         제4장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     93

제2부 전승으로서의 신학: 공의회와 교부들
         제5장 동방 정교회 관점에서의 신학 연구     115 
         제6장 고대 교회에서 전승의 역할     143
         제7장 고대 공의회들의 권위와 교부들의 전승     171
         제8장 본질적 전승과 비본질적 전승들     187

제3부 만남으로서의 신학: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
         제9장 부정의 신학과 삼위일체 신학     223 
         제10장 정교회의 삼위일체 신학에서 성령의 발현     245
         제11장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277

         제4부 선교 신학: 정교회와 서방교회
         제12장 정교회 전통에서의 선교 명령     297
         제13장 정교회에서 진리의 중요성     309


색인     321

서문

정교회 예배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 알렉산더 슈메만(Alexander Schme-mann)은 동방 정교회 신자들과 서방 기독교인들 사이에 얼마간의 상호작용이 있지만 정교회의 유산이 서구인들의 의식 속에 “통합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정교회를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이국적이고 동양적인” 종교로 간주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또 토마스 둘리스(Thomas Doulis)는 정교회로 개종한 사람들이 기록한 자서전적인 글 모음집 『정교회로의 여행』(Journeys to Orthodoxy) 서문에서 오늘날도 정교회는 “미국 내의 교파들 중에서 가장 알려져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 책은 미흡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위에서 말한 불운한 상태를 극복하며, 동방 정교회의 풍부한 전통을 서방의 기독교인, 즉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에게 소개하려는 의도로 저술되었다. 특히 여기에 실린 논문들은 정교회의 특징적인 주제들과 현대의 중요한 신학자들을 소개하기 위해 채택된 것들이다.

이 책은 정교회에 대한 해설서인 『동방 정교회 개론』(Eastern Orthodox Christianity, Grand Rapids: Baker, 1994)의 자매서로 기획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정교회 연구를 위한 변증을 하고, 동방 정교회의 간단한 역사를 제시한 후에 네 가지 주요한 신학적 주제-부정의 신학, 이콘, 성경과 전승, 신화(theosis)-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정교회 신학에 대한 개신교 입장에서의 평가를 수록했다.

그러나 정교회의 전승을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일까? 한 개신교 신자가 정교회 사제에게 그의 신학적인 신념들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그 사제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를 묻기보다는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를 묻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교회 신앙은, 정교회의 총대주교 셀레스틴 1세(422-32)가 말한 바 Lex orandi est Lex credendi et agendi(기도의 규칙이 신앙과 행위의 규칙이다)라는 격언을 문자 그대로 취하는 성찬예배의 전통이다. 서방 기독교인들은 신학을 도서관의 책으로부터 배우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정교회 신자들은 특별히 성소에서 베풀어지는 전례(성찬예배)와 예배로부터 신학을 배운다. 물론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정교회는 뛰어나게 풍성한 지적 유산을 향유하고 있다(그것은 서방 기독교가 풍부한 전례들을 잃지 않고 있는 것과 같다). 그 같은 현상의 기원은 삼위일체론적 정통주의를 위해 싸운 위대한 투사인 아타나시우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도 줄어들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논문들을 대하는 독자들은 정교회 신앙에 대한 학문적 분석을 정교회 유산의 특징인 예배의 전례적 경험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이 출판되는 데 도움과 충고를 주었다. 나는 특히 성 블라디미르 정교회신학교의 요한 브렉과 폴 마이엔도르프, 휘튼 대학의 제임스 스타물리스, 정교회 신앙과 복음주의 연구 협회의 브래들리 나시프,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사서인 케이스 웰스, 그리고 베이커 출판사의 편집장인 짐 위버와 레이 위어스마에게 감사한다.

대니얼 B. 클렌데닌

제1장

 

지상의 천국

티모티 웨어(Timothy Kallistos Ware)


“지상의 천국”은 웨어가 정교회의 예배와 성례전을 다룬 두 장 중 첫 번째의 것이다. 슬라브 민족이 이슬람이나 가톨릭이 아니라 정교회로 개종한 것에 관한 러시아 역사의 최초의 문서인 12세기 『러시아 주요 연대기』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웨어는 정교회의 삶과 사상에서 성찬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위치를 증명해 주고 있다. 다음의 본문은 예배와 신학적 교리의 관계에 관한 정교회의 개념을 논함에 있어서 특히 교육적이다.


교리와 예배
『러시아 주요 연대기』(Russian Primary Chronicle)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키에프의 왕 블라디미르가 아직 이교도였을 때, 그는 어느 종교가 참 종교인지 알고자 하여 세계 여러 나라로 사신들을 보냈다. 사신들은 처음에 볼가 강 지역의 회교도인 불가리아인들에게 갔는데, 당시 불가리아인들이 기도할 때에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들처럼 주위를 응시하는 것을 보고서 실망하여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그들은 블라디미르에게 “그들에게는 기쁨이 없고 비탄과 악취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체계에는 전혀 좋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들은 다음으로 독일과 로마를 여행했는데, 그곳의 예배가 다소 만족스러운 것을 발견했으나, 여기에도 역시 아름다움이 없다고 불평했다. 마침내 그들은 콘스탄티노플로 갔고 소피아 대성당에서 드리는 성찬예배에 참석함으로써 그들이 원하던 것을 발견했다. “그 때 우리는 하늘에 있는지 지상에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상의 어느 곳에서도 그같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묘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거기 사람들 중에 계셨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다른 모든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를 능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예배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정교회의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신적인 아름다움의 강조이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 때에 정교회를 믿는 민족들-특히 비잔티움과 러시아-의 특별한 은사는 영적 세계의 아름다움을 감지하고 그 아름다움을 예배 안에서 표현하는 능력이다.

두 번째로, 러시아인들이 “우리가 하늘에 있는지 지상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 특이하다. 정교회인들이 볼 때에 예배는 “지상의 천국” 바로 그것이다. 거룩한 성찬예배는 동시에 두 세계를 포용한다. 왜냐하면 지상에서나 천국에서 성찬예배는 동일한 것-하나의 제단, 한 희생제사, 한 임재-이기 때문이다. 예배하는 모든 장소에서, 비록 외적으로는 초라해도 신실한 자들이 성찬(Eucharist)을 거행하기 위해 모일 때에 그들은 “하늘의 처소”로 들려 올려진다. 어느 곳이든 거룩한 희생제사를 드리는 곳에는 그 지역의 회중이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보편 교회 즉 성인들, 천사들, 동정녀 마리아와 그리스도 자신이 임재하신다. “지금 천상의 권세들이 우리와 함께 하며, 눈에 보이지 않게 예배하고 있다.”-“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인간들 중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이 “지상의 천국”이란 통찰에 의해 고취되고 있는 정교회는 천국의 위대한 전례를 외적으로 빛나는 광채와 아름다움을 지닌 성화로 표현하려고 노력해 왔다. 612년에 거룩한 지혜의 교회의 직원은 80명의 사제, 150명의 보제(補祭), 40명의 여 봉사자, 70명의 부보제, 160명의 봉독자, 25명의 성가대원, 100명의 문지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사실은 블라디미르의 사신들이 참석했던 예배의 웅장함을 알 수 있도록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매우 다른 외적 환경에서 정교회의 예배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 역시 키에프에서 온 러시아인들 못지 않게 사람들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 임재를 느꼈었다. 『러시아 주요 연대기』에서 눈을 돌려 1935년에 어느 영국인 여성이 쓴 편지를 보라:

“오늘 아침은 아주 색다른 아침이다. 러시아인들은 어느 차고 위 아파트 안에 있는 매우 지저분하고 더러운 개신교 선교 센터를 빌려 두 주일에 한 번 성찬예배를 드리고 있다. 바로 무대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이코노스타시스와 몇 개의 현대적인 이콘, 더러운 마룻바닥과 벽 쪽에 놓인 긴의자 … 여기에 두 명의 훌륭한 노 사제들과 한 보제, 향 내음, 그리고 아나포라(성체 기도)에서 초자연적인 인상이 압도하고 있다.”

블라디미르의 사신들의 이야기는 정교회의 세 번째 특성을 묘사한다. 참 신앙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던 이 러시아인들은 도덕적 규칙들에 관해 묻지 않고, 합리적이고 교리적인 진술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다만 각 민족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종교에 대한 정교회의 접근은 근본적으로 전례적인 접근, 즉 신적 예배라는 맥락 안에서 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정통주의(orthodoxy)라는 단어가 올바른 신앙과 올바른 예배를 의미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서로 불가분리하기 때문이다. 비잔틴 사람들에 관하여 “그들에게 있어서 교리는 성직자들이 이해하여 평신도에게 설명해 주는 지적인 체계일 뿐 아니라, 성찬예배를 통해서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위대한 천상의 것들과의 관계 안에서 보이는 통찰의 장(場)이다”라고 말해진다. 조지 플로로프스키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는 성찬예배의 종교이다. 교회는 무엇보다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예배가 으뜸이고, 교리와 기독교적 훈련은 두 번째이다.” 정교회에 관하여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블라디미르의 사신들의 본을 받아 정교회의 성찬예배에 참석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안드레에게 “와서 보라”고 하셨다(요 1:39).

이처럼 정교회는 성찬예배를 통해서 신앙에 접근하기 때문에, 종종 의식의 세밀한 곳에까지 중요한 의미를 둠으로써 서방의 기독교인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교회의 삶에서 예배가 중심이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러시아 교회의 이교자(離敎者: Old Believers)들의 분열과 같은 사건을 그런 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예배가 행동하는 신앙이라면, 전례적 변화들은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15세기의 어느 러시아인 작가가 플로렌스 공의회를 공격하면서 라틴인들의 결점이 교리상의 오류가 아니라 예배에서의 행위라고 비난한 것은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당신은 라틴인들 가운데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광대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그들의 노래는 불협화음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들은 예배 안에 있어야 할 미와 경외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트럼본이나 나팔을 불고, 오르간을 사용하고, 손을 흔들고 발로 장단을 맞추며, 그것도 모자라 악마에게 기쁨을 주는 많은 엉뚱하고 무질서한 일들을 행합니다.”

정교회에서는 인간을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진실로 참된 존재가 되며 예배 안에서 자신의 완전과 자아 성취를 발견하는 성찬예배적 피조물로 본다. 정교회 신자들은 자신의 신앙의 표현인 거룩한 성찬예배 안에 자신의 모든 종교적 경험을 쏟아 놓았다. 성찬예배는 그들의 시, 예술, 음악에 영감을 주어 왔다. 정교회의 성찬예배는 중세 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결코 학식 있는 자나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적인 것, 즉 전체 기독교인들의 공동 소유로 남아 있었다.

“정교회의 정상적인 평신도 예배자는 유아기부터 유지해온 친숙함 때문에 교회에 있을 때에 마치 집에 있는 듯이 편안하며, 거룩한 성찬예배의 모든 부분에 정통하며, 그 의식에 무의식적이고 편안하게 참여하되 서방교회에서는 신심 깊은 자들과 교회적으로 훈련된 지성의 소유자만이 동참하는 수준까지 참여한다.”

역사적으로 몽고와 터키, 또는 공산주의의 지배하에 있었던 암흑시대에, 정교회를 신봉하는 민족들은 항상 영감과 새로운 소망을 얻기 위해 거룩한 성찬예배를 의지했으며, 그러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외부의 상황: 사제와 백성
정교회 예배의 기본 형태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같다. 첫째로 성찬예배가 있고, 둘째로는 성무일과(만과, 석후과, 심야과, 조과)가 있으며, 시과로는 제1시과[오전 9시 기도], 제3시과[정오 기도], 제6시과[오후 3시 기도] 그리고 제9시과[오후 6시 기도] 등 여덟 차례  기도 시간이 있다. 셋째는 특별한 경우에 행하는 성사로서, 예를 들면 세례, 결혼, 수도 서약, 대관식, 교회 봉헌, 그리고 장례 등 특별한 경우를 위해 의도된 예배이다. 정교회에서는 이것들 외에 여러 가지 준성사들을 집례하고 있다.

영국 국교회의 많은 교회 및 거의 모든 가톨릭 교구 교회에서 매일 성찬식이 거행되지만, 오늘날 정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수도원이나 주교가 있는 대성당을 제외하고는 날마다 성찬예배를 드리지는 않으며, 일반 교구 교회에서는 주일과 축일에만 거행된다. 그러나 현대 러시아에서는 예배 장소가 거의 없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주일에 직장에 나가야 하는데도 많은 도회지의 교구에서 매일 성찬예배가 거행되고 있다. 성무일과는 매일 러시아의 많은 도회지의 교구에서는 물론이요 일부 대성당 및 크고 작은 수도원에서 거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교회의 평범한 교구 교회에서는 주말이나 축일에만 드려진다. 그리스의 교회들은 저녁 기도(vesper)를 토요일 저녁에 드리며 아침 기도(Matin)는 주일 아침 예배 전에 드린다. 러시아 교구에서 아침 기도는 일반적으로 토요일 저녁 기도 후 곧바로 이어서 드린다. 따라서 이 두 기도 및 그 뒤에 이어지는 조과(prime)는 철야 기도회 혹은 철야 예배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서방 기독교인들은 주일 저녁에 예배를 드리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에, 정교회 신자들은 토요일 저녁에 예배를 드린다.

정교회 예배에서는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안디옥에서는 아랍어로, 헬싱키에서는 핀란드어로, 동경에서는 일본어로, 런던과 뉴욕에서는 영어로 예배를 거행한다. 9세기의 키릴과 메토디우스로부터 19세기의 이노센트 베니아미노프와 니콜라스 카자트킨에 이르기까지, 정교회 선교사들이 행한 우선적인 과업은 예식서를 그 지방의 토착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방 토속어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원리에 반하는 예외들이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교회들은 현대 그리스어가 아니라 신약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그리스어를 채택했으며, 러시아 교회는 지금도 9세기에 슬라브 교회에서 사용하던 역본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경우에 성찬예배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그 지방의 현대 언어 사이의 차이는 회중들이 예배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크지 않다. 1906년에 많은 러시아 주교들은 교회에서 슬라브어 대신에 현대 러시아어를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실행되기 전에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오늘날 정교회의 예배는 초대교회에서처럼 모두 찬송이나 성가로 진행된다. 정교회에서는 가톨릭 교회에서처럼 합창이 없는 독창 미사(low mass)나 영국 성공회에서처럼 “said celebration”(대화식 성찬식)과 같은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모든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는 물론 성찬예배 때에도 향을 피우며, 성가대나 회중이 없이 사제와 한 명의 봉독자만 있어도 의식은 진행된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정교회의 음악에서는 8개의 음조를 가진 고대 비잔틴 단선율 성가(plainchant: 무반주로 제창하는 초기 기독교 시대로부터의 교회 음악-역자주)가 사용된다. 비잔틴 선교사들이 슬라브 땅에 도입한 이 단선율 성가는 여러 세기를 거치는 동안 광범위하게 수정되었고, 슬라브 교회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교회 음악의 전통과 형태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전통 중에서 러시아의 전통이 서방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즉각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 교회 음악이 모든 기독교 음악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소련 연방 및 그곳에 있는 이주자들 역시 러시아 성가대들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까지 정교회 내에서의 성가는 일반적으로 성가대가 행하고 있다. 오늘날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그리스와 러시아, 그리고 루마니아와 디아스포라의 교구들 중에서 회중 찬송을 부흥시키려는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다. 예배 전체에서는 아니지만 특별한 순간, 이를테면 신조와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에 회중 찬송을 적용할 수 있다.

오늘날도 정교회에서는 초대교회에서처럼 찬송이 사용되지 않으며 기악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미국 정교회의 그리스인들은 오르간이나 하모니카를 선호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교회에서는 교회 안에서 손이나 종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밖에는 종루가 있어서, 예배 전에는 물론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종을 울린다. 러시아에서의 타종 소리는 특히 유명했었다. 알렙포의 폴은 1655년에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주일 밤과 큰 축일 전야 및 자정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만큼 많은 영향을 나에게 준 것은 없다. 그 진동소리에 땅이 떨렸다. 그 소리들은 천둥처럼 하늘로 울려 퍼졌다. …그들은 관습대로 청동으로 된 종들을 쳤다. 하나님께서 요란하면서도 즐거움을 자아내는 그 소리에 놀라지 않으시기를!

정교회의 건물 형태는 일반적으로 사각형으로서 중앙에는 둥근 지붕으로 덮인 넓은 공간이 있다(러시아에서 교회의 둥근 지붕은 양파의 형태로서, 러시아 전 지역의 특징적인 풍경을 이룬다). 고딕식 대성당이나 규모가 큰 교구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 길게 이어진 중앙의 회중석과 성단소(聖壇所)는 동방 정교회의 건축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벽면에 긴의자나 성직자석이 놓일 수도 있지만, 교회의 중앙에는 의자나 회중석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정교회 신자들은 서서 예배를 드린다(정교회 신자가 아닌 방문객들은 종종 늙은 부인들이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서서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고 놀란다). 그러나 회중들이 앉거나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제1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의 교회법 제20조는 주일이나 부활절부터 성령강림절 사이의 50일 동안에는 무릎을 꿇는 일을 금지하고 있지만, 오늘날 이 규칙이 항상 엄격히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회중석의 유무는 기독교 예배의 전반적인 정신에 현저한 차이를 가져온다. 알프스 북부에 있는 정교회의 예배에는 서방교회의 회중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융통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비격식성이 있다. 서방의 예배자들은 지정된 곳에 있는 좌석에 줄을 맞추어 앉으므로 예배 도중에 움직이면 소란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서방교회의 회중은 예배 전에 도착하여 끝까지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교회의 예배자들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예배 중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도 누구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성직자들의 행위에서도 동일한 비공식성과 자유함이 특징을 이룬다. 예식과 관련된 동작은 서방에서처럼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성직자들의 자세는 덜 형식적이며, 훨씬 자연스럽다. 이런 비공식적인 모습이 때로는 불경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나, 그것은 정교회가 상실할 경우 매우 유감스러울 중요한 특징이다. 정교회 신자들은 교회에 있으면 아주 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연병장에 있는 군대가 아니라, 아버지의 집에 있는 자녀들이다. 종종 정교회의 예배는 “저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말해진다. 그러나 더욱 진실하게 말하자면 “가정적”이라고 묘사되어야 한다. 즉 예배는 가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가정적이며 비공식적인 면 뒤에는 신비에 대한 심오한 의식(意識)이 있다.

모든 정교회의 성소는 이코노스타시스(iconostasis)에 의해 분리된다. 이코노스타시스란 성화들이 그려진 나무 칸막이이다. 초기에는 이코노스타시스의 높이는 3-4 피트로서 낮았다. 이렇게 낮은 이코노스타시스는 베니스에 있는 성 마가의 교회에서 볼 수 있다. 최근에 들어서(여러 지방에서는 15세기나 16세기에) 비로소 이 기둥들 사이의 공간이 채워졌고, 이코노스타시스가 현재와 같은 완전한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정교회 전례학자들은 크론스타트(Kronstadt)의 요한 사제가 제시한 본보기를 따라 이코노스타시스를 보다 개방된 형태로 개조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몇 곳에서는 이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코노스타시스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중앙에 있는 큰 문(거룩하며 호화로운 문)을 통해서 제단을 볼 수 있다. 이 문은 두 짝으로 되어 있고, 그 뒤에는 커튼이 드려져 있다. 부활절 주간을 제외하고는, 예배 시간 외에 그 문은 닫혀 있고, 커튼이 드려져 있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에 그 문이 때때로 열리고 때로는 닫히는데, 문이 닫힐 때에는 커튼도 드려진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의 교구에서는 성찬예배가 진행되는 내내 문을 닫지 않고 커튼도 치지 않는다. 많은 교회에서는 두 짝으로 된 문을 완전히 제거했고, 또 어떤 교회들은 전례학적으로 훨씬 더 정확하게 문은 그대로 두고 커튼은 제거했다. 나머지 두 개의 문 중에서 왼쪽에 있는 문은 성찬준비소(prothesis: 여기에는 성찬 그릇이 보관되며, 사제는 이곳에서 성체와 성혈을 준비한다)로 통한다. 오른쪽의 문을 통해서는 봉사실(diakonikon)로 들어가는데, 이곳은 요즈음 일반적으로 제의방(祭衣房)으로 사용되지만 원래는 성경 특히 복음서와 성유물이 보관되었던 곳이다. 평신도들은 성찬예배 때에 복사(服事)의 일을 하는 경우 외에는 이코노스타시스 뒤에 들어갈 수 없다. 정교회에서 제단(거룩한 식탁, 또는 보좌라고 불린다)은 성소 중앙에 위치한다. 제단 뒤 벽을 마주 보고 주교의 자리가 놓인다.

정교회는 성화로 가득 차 있다. 칸막이에, 벽에, 특별한 성물함에, 혹은 책상 위에 성화가 놓여져 신자들이 공경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정교회 신자들이 교회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은 양초를 사 가지고 성화에 다가가서 성호를 긋고 성화에 입을 맞추고 그 앞에서 촛불을 켜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 때에 러시아를 방문한 영국 상인 리차드 챈슬러는 “그들은 위대한 촛불 봉헌자들이다”라고 평했다. 교회를 장식하는 데 있어서 성화들은 임의적으로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신학적 계획을 따라 배열되므로, 교회 건물 전체가 하나의 위대한 성화, 또는 하나님 나라의 이미지를 이룬다. 정교회의 종교 예술에는 중세 서방의 종교 예술에서처럼 교회 건물 전체와 장식을 포함하는 정교한 상징의 체계가 있다. 성화,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등은 단순히 교회를 근사하게 보이려고 계획된 장식이 아니라, 나름대로 성취해야 할 신학적이고 전례적인 기능을 지닌다.

교회를 가득 채운 성화들은 천국과 지상이 만나는 지점 역할을 한다. 각 지역의 회중이 매 주일 그리스도와 천사들과 성도들의 형상에 둘러싸여 기도할 때에, 이 보이는 형상들은 예배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천국의 전체 회중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상기시켜 준다. 신자들은 교회의 벽이 영원을 향해 열린 것을 느끼고, 지상에서 드리는 성찬예배가 천국의 위대한 성찬예배와 동일한 것임을 깨닫도록 도움을 받는다. 성화들은 천국에 대한 의식을 가시적으로 표현한다.
정교회 예배는 공동체적이고 대중적이다. 정교회 예배에 종종 참석하는 비정교회인들은 예배하는 전체 공동체(사제와 회중)가 얼마나 밀접하게 결속되어 있는지를 재빨리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회중석의 부재는 일종의 일체감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부분 정교회의 회중들은 찬송에 실제로 참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예배의 실제적인 참여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견고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이코노스타시스가 교인들로 하여금 성소에 있는 사제들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많은 예식들이 성화 칸막이 앞에서, 즉 회중들이 완전히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거행된다.

정교회의 평신도들은 “미사를 듣는다”(hear the mass)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교회에서 미사는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을 위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학문적인 언어로 성찬식이 집례된 중세 시대의 서방에서 사람들은 성체 거양을 위해서 교회에 갔지만, 다른 경우에 미사는 주로 개인적인 기도를 드리기 위한 편리한 기회로 취급되었다. 정교회의 성찬예배는 항상 사제와 평신도가 함께 행하는 하나의 공통된 행위였으며, 회중은 개인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배 의식 자체의 행위에 참여하며 성찬예배의 공동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간다. 정교회에서는 중세 시대 및 중세 이후의 서방교회가 경험했던 바 전례와 개인적인 헌신의 분리를 경험한 적이 없다.

확실히 서방교회는 물론 정교회는 하나의 성찬예배 운동을 필요로 한다. 사실 그러한 운동은 이미 정교회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소규모로 시작되었다(회중 찬양의 부흥, 예배가 거행되는 동안 거룩한 문을 열어두는 것, 보다 개방적인 형태의 이코노스타시스 설치 등). 그러나 필요한 변화가 크게 근본적인 것은 아니므로 정교회 내에서의 성찬예배에 관한 운동의 범위는 크게 제한될 것이다. 서방에서 부흥시키려는 성찬예배 개혁의 주요 목표인 공동 예배라는 의식은 끊임없이 정교회 내에 살아 있었다.

대부분의 정교회 예배는 성급하지 않고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연도(蓮禱: litany)를 끊임없이 반복한 데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연도는 다소 긴 형태나 짧은 형태를 취하는데, 비잔틴 의식의 모든 예배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다. 연도를 드릴 때에는, 보제(보제가 없을 경우에는 사제)가 교인들에게 교회와 세상의 여러 가지 필요한 일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요청하며, 각각의 간구에 대해 성가대나 교인들은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Kyrie eleison)라고 화답하는데, 아마 이 표현은 정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정교회 예배에서 파악하게 되는 최초의 표현일 것이다(어떤 연도에서는 그 화답이 “주여, 이것을 주소서!”라고 바뀌어 있다). 회중은 십자성호를 긋거나 몸을 굽혀 절을 함으로써 여러 가지 상이한 중재기도에 합류한다. 일반적으로 십자성호를 긋는 행위는 서방교회보다 정교회에서 훨씬 더 자유롭고 빈번하게 행해진다. 물론 예배 도중에 모두가 동시에 성호를 그어야 할 특별한 경우들이 있지만, 예배자들은 각기 다른 순간에 나름대로 성호를 긋는다.

앞에서 정교회 예배가 시간 상의 제한이 없고 조급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비잔틴의 예배가 문자 그대로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길게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교회의 예배 중에 나타나는 기능들은 서방교회에서의 기능들에 비해 다소 긴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 1시간 15분 동안 비잔틴식의 성찬예배를 드리면서 짧은 설교를 한다. 실제로 1943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그의 관할 하에 있는 교구 내의 모든 교회의 주일 예배 시간이 1시간 반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공포했다. 전반적으로 러시아인들의 예배 시간은 그리스인들의 예배 시간보다 길다. 그러나 이민들이 모이는 정상적인 러시아 교구에서의 주일 저녁 예배는 두 시간 이상 걸리지 않고, 때로는 그보다 짧다. 물론 수도원에서의 성무는 보다 오래 지속된다. 아토스 산에서 거행되는 큰 축일의 예배는 휴식 없이 12시간 내지 15시간 이상 계속되는데,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이다.

정교회 신자들 자신도 종종 예배 시간이 길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알렙포의 폴은 러시아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지금 우리의 고통과 진통이 시작된다. 교회에는 좌석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주교를 위한 좌석도 없다. 당신은 교인들이 예배 시간 내내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 있거나, 기도하면서 끊임없이 몸을 굽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 그들이 드리는 오랜 기도와 성가와 미사에 참여하게 해주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큰 고통을 겪어 우리의 영혼이 피로와 고민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난 주간에 다음과 같이 외쳤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도우사 이 한 주간을 견뎌낼 수 있게 하소서! 모스크바인들의 발은 쇠로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